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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고민

아르바이트 경험담

by 화행 2018.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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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까지 아르바이트에 대해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당시 돈은 없고 그러니 남는 시간으로 어떻게든 일해서 돈벌고 싶었고 돈벌면 먹고싶은것, 사고싶은것, 입고싶은것 마음껏 살 수 있을 거란 생각때문이었다. 처음에 아르바이트 했던 건 중학교때 전단지를 돌렸을 때다. 아무것도 모르고 한장당 20원 준다고 해서 한장한장 아파트에 돌리고 다녔다. 그리고 경험없이 한 댓가일까, 하루하고 잘린 기억이 있다. 이유는 너무 많이 못돌려서 였다. 열심히 했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느정도 돌리고 난 후 쓰레기장에 버리던지 몰래 숨기던지 등등의 방법으로 꼼수를 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요령이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도 몰랐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정당하게 일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고 난 수능치고 난 후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게 된다. 지금 쓰는 이 글은 아르바이트 했던 것을 정리하며 다른 사람들이 참고로 하였으면 싶어서 적는다.




1. 전단지 아르바이트


수능치고 시간이 너무남아 했었던 아르바이트이다. 당시 장당 20원에서 25원. 약 3시간 돌리면 2만원 정도 벌었었는데 즉 3시간에 1000장 정도 돌려야 2만원이 가능했었다. 그래서 1시간에 330장 정도 돌렸던거 같고 10분에 50~60장 정도 돌린 샘인데 이정도 돌렸던거 같다. 처음에는 되게 힘들었고 계단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 다리에 알도 배겼었지만 계단 다니면서 풀면된다는 사장의 말에 그말듣고 계속 돌리러 다녔다. 처음엔 긴가민가하였지만 딱히 선택지도 없었기에 계속 돌렸는데 신기하게도 다리가 점점 풀렸다. 그리고 계속 적응하다 보니 점점 빨라지고 돈도 좀더 벌었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 아르바이트는 약 한달동안 하였고 요즘에는 아파트의 입구부터 잠금장치 되어 있는 곳이 많아 아파트에 돌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 싶다. 밖에 전단지 돌리는 분들 보면 요즘엔 시급으로 한다고 들었는데 잘 모르겠다.


전단지를 돌리며 기억에 남는 일은 아파트에 한장씩 돌리다가 어떤 할아버지랑 마주쳤는데 전단지 돌리는걸 눈치채고 밖에 경비원에게 소리쳤었다. "여기 전단지 돌리는 애들좀 잡아가!" 라며 크게소리치는바람에 미치도록 도망간 기억이 있었다. 그당시 그냥 그상황이 무서웠다. 혼나는것도 지금생각하면 별건 아닌데 정말 무서웠기에 미치도록 도망쳤었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계단 청소하시는 분이랑 마주친적이 두번 있었다. 처음 마주친 어떤 아주머니는 돈번다고 고생한다며 격려했었지만 두번째 만난 다른 아주머니는 나에게 경멸스런 표정을 보이며 욕을 퍼부었었다. 청소하느라 힘드신 상황이 이해가 갔지만 이러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였다. 당시 어렸기에 그냥 욕먹고 지나갔었다.


지금도 전단지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보면 괜시리 그때 생각이 난다.



2. 공장아르바이트


흔히 공장이라면 여러가지 이미지가 있지만 대부분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 즉 3D를 떠올린다. 내가 했던 일은 단순작업이었기에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더럽고 힘들긴 했었다.


첫번째 공장은 대학가기전 약 2달전쯤이었다. 친구아버지가 다니시는 직장에서 잠시 아르바이트 할 사람 찾는다고 하여 지원하게 되었고 일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약 8시 근방쯔음까지 출근하였었고 집에서 걸어가면 30분 거리었기에 걸어서 출퇴근 했다. 버스도 잘 오지 않았고 출퇴근시간엔 버스와 걷는 시간이랑 비교하면 비슷하였기에 그냥 걸어다녔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맡았던 것은 포장이었는데 공장의 주력품목은 못이었다. 생산한 못을 상자에 넣어 테이프로 봉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말만 들으면 간단하다. 실제로 간단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이른아침부터 나가서 출근 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게 힘들었었고 계속해서 서있어야 했다. 2시간 일하고 10분인가 15분 쉬는 형태였는데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은 다른곳은 1시간이었지만 여긴 30분이었다. 30분더 일하는 대신에 그 시간은 시급의 1.5배를 처주었었다. 이미 시스템은 그렇게 되어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거의 하루에 1시간만 공식적으로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저녁 8시까진가 7시 30분까진가 까지 일했던것 같다.


공장은 기계소리가 항상 큰 소리로 들려서 옆에 있는 사람도 크게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혼자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며 일해도 아무도 듣지 못했다. 또 항상 쇳가루가 공기중에 떠다녔는데 잠깐 쉬는시간에 방진마스크 벗으면 마스크주위에 시커먼 자국이 있었다. 뭔가 이 일을 오래하다간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일을 마치고 난 후엔 회사에 있는 목욕탕에서 씻고 집에 들어갔다. 그때는 겨울이었기에 따뜻한 물로 씻고 집에 들어갔다.


이후 급여가 나오게 되었고 그 급여를 받으니 그간 고생이 날아간 것 같았다. 난생 처음받았던 큰 돈이었다. 내가 다 쓰진 못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당시 어머니에게 금액의 상당량을 주었었고 이후 대학교때 자취방 잡을때 쓰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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